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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벽화들(을지로3가)

[발굴] 지하철 벽화의 최고봉,을지로3가(2)

2001.3.10.토요일

딴지 문화유산 발굴팀 도대체

숨가쁘게 벽화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직 더 남아있다. 이제부턴 앞에서의 단편적인 해석이 아니라 보다 복잡미묘하며 사회 고발 정신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 등장한다. 지루하신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들이니 하품하지 말고 보시거라들.

두 사람이 '엎드려 fuck쳐', 아 아니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다른 한 사람은 둘을 가리키며 꼿꼿하게 서 있다. 보는 순간 중고딩 시절이 떠오르지 않는가? 부당한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해야만 했던 엎드려 뻗쳐, 그리고 그 외의 무수한 체벌과 기합들.. 가슴시린 한국 중고딩의 현실을 가감없이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벌을 받는 이나 벌을 주는 이나 같은 실루엣으로 처리, '니랑 내랑 똑같은 사람인디!'란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교복을 입은 채 다른 일을 동시에 하는 학생의 모습이다. 그림을 그리고 컴터를 하고 책을 보며 피아노를 두드리는 비정상적인 여섯 개의 팔과 난감해하는 학생의 표정. 여러 개의 과외를 하느라 등골이 휘는 울나라 아그덜의 모습 아니겠는가. 통렬한 비판이 담긴 작품이다.


학창시절 과학실에서 보던 알콜램프다. 일그러진 램프의 표정을 보라. 램프로 태어나긴 했는데 학생덜이 실험을 자주 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 돼 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 양쪽에 팔뚝모냥 성냥개비를 꽂아 그기에도 불을 붙여부렀다. 변변한 실기 수업 없이 공식과 결과만 암기하는 과학 수업에 대한 풍자인 셈. 본 기자 조때로 부제를 붙이자면 '램프는 불타고 싶다'정도가 되겠다.

 

청소년 시리즈는 계속 이어진다. 오른쪽 작품은 걸려있는 만국기와 달리기를 하는 학생들로 알 수 있듯 어느 학교의 운동회 풍경.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원인은 풍경 뒤의 높은 건물. 만국기 위로 파란 하늘이 널리 펼쳐있지 않고 고층 빌딩이 떡하니 보이는 광경은 숨막히는 도심 속에 갇힌 채 잠시나마 운동회로 답답함을 푸는 것을 암시. 작가의 안쓰러운 심경이 드러나있다.

휘릭 지나쳐 버리면 의미를 간파하기 힘든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지하철 내부. 손잡이를 잡고 일렬로 서있는 교복입은 여학생들의 모습이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등하교하는 중고딩의 일상을 표현한 것. 만원 지하철을 얼마나 타고다녔으면 팔뚝이 죄 이따시만해졌다. 그리고 또 주목할 것은 텅텅 비어있는 좌석. 빈 자리가 있어 피곤한 심신을 싣고 앉아서 깜박 졸라치면 어느새 머리를 쥐어박으며 호통을 치는 어르신네들.. 그로 인해 맘놓고 빈 자리에 앉지 못하는 어린 학생덜의 애환을 묵묵히 담아내었다.

다음 작품의 감상. 보다시피 두 인물이 위풍당당 웃고 있다.

요런 인물들이 다른 쪽에선

이렇게 변해있다.

자아분열과 자기 해체, 주체성의 상실 등에 대한 심오한 주제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더욱이 조각조각 분열된 상황에서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여전히 웃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은 아무 의식 없이 세상에 이끌려가는 현대인의 맹점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손톱깎기에 장식을 달아 마치 두 눈을 감은 사람의 얼굴처럼 묘사하였다. 작가는 아마도 손톱을 깎을 때마다 힘주어 손에 쥐는 손톱이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참는 것이란 느낌을 받았나부다. 작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해 안쓰러워하는 측은지심이 아름답다.


오른쪽 작품 속 전화기의 수신구에선 소음을 뜻하는 번개 마크가 흘러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수화기에 달린 문어발을 보라.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으면 땀방울까지 송글송글 떨어진다. 전화라는 문명의 이기로 생활은 더없이 편리해졌으나 그로 인해 점차 침해받는 사생활과 얽매임 또한 만만치 않다. 작가는 걸려오는 전화와 그것에서 벗어나고파 도망치듯 달려가는 수화기를 통해
문명의 역기능을 고발하였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비쩍 마른 나뭇가지가 쓸쓸히 서있는 어느 초겨울이다. 모두들 도도한 자세로 거리를 지나가고 있으나 서로 얼굴을 바라보거나 미소를 짓는 사람은 없다. 그저 황량할 뿐이다. 작가는 관광한국의 부흥을 염원하며 오고가는 이들이 밝은 미소를 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닐까 사료된다. 더불어 웃고싶어도 웃지 못하게 만드는 경제난이 어서 물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오른쪽 작품의 주인공은 마치 영화 '혹성탈출'을 연상케 한다. 망원경으로 바라본 동그란 창 안에 들어있는 한 마리의 고릴라. 밀림 탐험대원이 고릴라를 발견하고 들여다보고 있는데 고릴라는 손꾸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를 조롱한다. 그러다 먼 발치에 보이는 기다란 탑을 발견한 대원은 깜딱 놀래부린다. 그곳은 도심속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허우대를 갖고 있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 등 정글의 법칙 속에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상황을 놀라운 은유법으로 묘사하였다.

등장인물의 뒷쪽으로 까만 언덕이 보인다. 주인공은 이제 막 그 음침한 곳을 넘어 푸릇푸릇한 언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길고 긴 역경의 시간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기뻐서 펄쩍펄쩍 뛰거나 하지도 않고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주인공의 결연한 표정을 보라.
 

세계 평화를 열망하는 작가의 소망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영롱한 별 아래 환하게 웃으며 같은 곳을 향해 헤엄치고 있는 지구촌 사람들. 여기에 피부색의 구분은 없다. 서로 섬에 먼저 닿으려고 싸우는 모습도 없다.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다른 모든 벽화가 우수하지만 당 작품이 본지에서 선정한 최우수 벽화 되겠다. 비스듬히 마주보고 선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전운이 감돈다. 유심히 보라. 이 둘은 지금 서로 상대방의 변기에 조준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크로스 카운터의 새로운 버전 되겠다. 막상막하의 오줌빨을 내뿜으며 누가 이길지 예측불가한 숨가쁜 상황.. 어느 누가 이러한 대결 구도를 상상, 작품으로 승화시키겠는가. 본 작품의 작가가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라 단언한다. 본 작품으로 인해 크로스 카운터를 시도하는 많은 독자들이 생길 거란 흐뭇한 상상을 하여본다.

여기까지.


이상과 같은 벽화들을 살펴보았다. 지면 관계상 44점의 작품을 모두 소개하지는 못 하였지만 혹시 을지로 3가역 환승 통로를 지나칠 기회가 생긴다믄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작은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오묘한 무언가가 또 있을 거시다.

스쳐 지나가도 그만일 수 있는 지하철역의 환승통로 벽화. 그러나 다른 눈으로 바라보면 무궁한 해석이 가능하며, 이후로는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들며 친근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무취 무미의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나마 부여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주변에 늘 같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대수로이 지나치기 십상인데 알고보니 특이하다덩가, 두고보니 숨은 뜻이 있었단 풍경이 있다면 서둘러 제보해주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위의 벽화들에 대한 본 기자의 관점과 상관없이 자신만이 내릴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이 있다는 독자덜은 연락주시고. 앤드 본 기자의 날카로운 추적 실력으로 지하철 공사에 수차례 문의한 결과로도 위 벽화의 작가를 밝혀내지 못한 점 심히 안타까운 바, 작가를 아시는 분의 연락을 기둘린다. 또한 날아가는 학이나 소나무 등 구태의연한 여타 지하철 벽화와 달리 이런 파격적인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작가에게 장을 열어준 당시의 공사 담당자의 소재를 애타게 기둘린다.

 딴지 문화유산 발굴팀장
도대체(dodaeche@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