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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도 끊고 10kg나 빠져…의사 “폐에 물 찬 듯”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 ㅠ.ㅠ

소금도 끊고 10kg나 빠져…의사 “폐에 물 찬 듯”
기륭전자 비정규직 2명 단식사투 66일째
김소연분회장·유흥희조합원 “그만 못 둔다”
8월6차례 교섭 교착…회사 “법적책임 없어”
한겨레
» 15일 오후 서울 금천구 기륭전자 본사 경비실 지붕위 천막 안에서 66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김소연(왼쪽에서 두번째),유흥희(왼쪽에서 세번째) 조합원을 동료들이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비정규직은 이렇게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15일로 66일째 단식농성 중인 김소연 기륭전자분회장은 “소금·효소도 끊겠다”며 이런 절박한 호소를 던졌다. 회사는 불법 파견이나 외주화, 폐업 등 갖은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가면 그만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줄 법의 울타리는 허술하기만 하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비정규직들이 단식, 고공농성에 나서는 이유다. 목숨까지 내건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묻고 있다. 생명보다 돈을 앞세운 ‘야만의 시대’에 860만명에 이른 비정규직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4년 동안 힘들게 싸워 왔는데,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요.”

서울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단지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 천막 안. 지친 모습으로 누워 있던 유흥희(38)씨는 가녀린 목소리지만 힘주어 말했다. 15일로 그의 단식은 66일째다. 14일 의사는 “폐에 물이 찬 것 같다”며 “호흡곤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자”고 권했다. 함께 단식 중인 김소연(39) 기륭전자분회장의 몸 상태도 지난 12일 소금과 효소를 끊은 뒤 급속히 나빠졌다. 이미 보름 전부터 10㎏ 넘게 몸무게가 빠졌던 두 사람의 몸은 더 앙상하게 말랐다. 가슴 통증으로 말을 잇는 것조차 고통스런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문제 해결 때까지는 단식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이들이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인데도, 노사 교섭을 통한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사실상 손을 놓았고, 그나마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11일 동안 동조 단식을 하며 중재에 나섰지만 노사 양쪽을 설득할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4s■ 출구 없는 교섭…난항 계속] 지난 14일 서울지방노동청 관악지청에서 열린 노사 교섭은 저녁 7시께 ‘잠정 중단’됐다. 8월 초부터 열린 여섯 차례 집중 교섭, 특히 13~14일 마라톤 협상으로 ‘극적인 합의’도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이날은 변호사까지 참석해 잠정합의안 문구를 조율했지만, 끝내 막판 합의에 실패한 것이다. 다음 교섭 성사 여부나 일정은 모두 불투명하다. 이날 저녁 조합원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 ‘죽음의 사투’를 견뎌야 할 김소연·유흥희씨를 걱정해서다. 참다 못한 오석순(43)씨는 결국 ‘엉엉’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윤종희(39)씨는 “누구보다 단식 중단시키고 싶어 미칠 것 같지만, 천일 넘게 싸워온 뜻을 지키는 것이 그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4s■ 구멍투성이 ‘법’ 고쳐야] 회사는 교섭 과정에서 “중국으로 옮겨간 생산라인의 일부를 하청받을 신설회사에 조합원들을 고용시킨다”는 제안을 내놨다. “물량과 임금, 기술교육 등을 지원하겠다”는 회사의 말에, 노조는 “고용의 질만 보장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주장해온 노조로선 큰 양보였다. 하지만 이날 노조의 기대는 또 한 번 부서졌다. 회사가 턱없이 낮은 수준의 고용보장 기간과 임금, 복직 대상 조합원 수 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회사가 ‘배짱’을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불법 파견’을 저지르긴 했지만 벌금을 물고 생산라인을 완전도급으로 돌렸기에, 더 이상 “법적 책임은 없다”는 주장에서다. 실제 현행법상 회사 쪽이 잘못했더라도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할 의무로 정한 파견기간 2년을 넘지 않거나 계약근로가 끝난 기륭전자 비정규노동자를 구제할 방법은 없다.

일부 사내하청노동자 외에 비정규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싸움을 벌여 ‘직접고용’된 사례가 없는 것도 그래서다. ‘법대로 하자’는 회사 앞에 비정규 노동자는 영원한 패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파견법 등 법·제도적인 허점으로 인해 기륭전자 사태가 빚어진 만큼, 법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김철희 대표는 “기륭전자 같은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의 실질적 사용자라는 점을 명시하고 단체교섭 의무를 지우는 등 근본적으로는 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