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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어진 사무라이들 절로 들어가 도박판 개설

[blog+] 할 일 없어진 사무라이들 절로 들어가 도박판 개설 [JES]
'야쿠자'라는 말의 유래
일본에서는 조폭을 흔히 '야쿠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조폭들은 야쿠자라는 말을 매우 싫어하는 모양이다. 조폭들은 야쿠자란 말 대신 '협객'이나 '고쿠도(極道)'라는 식의 그럴듯한 이름을 고집한다.

아마 그것은 야쿠자라는 말에서 좀 모자란다는 이미지가 풍기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야쿠자라는 말 자체에서 비롯된 것은 결코 아니다. 야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누적된 행실이 야쿠자라는 말의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야쿠자라는 말 자체는 원래 전혀 나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야쿠자는 앉아서 일했던 사람들
 
야쿠자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에 대한 설명은 각양각색이다. 가령 일본판 '위키피디아'를 보면 야쿠자란 용어가 카루타라는 화투 비슷한 게임으로부터 유래한 것처럼 적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설은 야쿠자가 한자로는 왜 '역좌(役座)'라고 썼는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역좌라는 말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앉는 자리', 혹은 '누가 앉아서 어떤 역할을 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싸움만 일삼는 야쿠자들이 앉아서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사실 야쿠자들이 앉아서 할 일이라야 뻔하다. 공갈 아니면 도박이다. 초창기 야쿠자들이 한 일은 도박이었다.

▲사무라이에서 야쿠자로
 
전쟁이 나면 군인은 불어난다. 문제는 전쟁이 끝났을 때다. 불어난 군인들에게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주어서 정착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기나긴 전국시대를 거쳐 도쿠카와가 일본을 평정하고 나니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는 무사들이 문제였다. 당시 실업자로 전락해버린 무사 계층이 50만 명에 이르렀지만 막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마침내 무사들은 절을 찾아갔다.

하지만 절밥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절에 머무는 무사들도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무사들이 할 줄 아는 것이라야 싸움과 공갈, 협박이니 이런 재능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도박 말고는 없었다. 결국 이들은 절에 도박장을 개설했다. 야쿠자들은 평민들에게 도박을 위한 공간을 제공해주었고, 도박장에서의 싸움을 막아주었다.

야쿠자들은 그 대가로 '역좌'라는 자리에 앉아 개평(돈을 딴 도박꾼에게서 받아내는 일부의 돈)을 뜯어 생활했다. 여기에서 야쿠자라는 말이 시작됐다. 한편 지금도 일본에서는 개평을 '절의 돈'이라는 의미인 '사전(寺錢)'이라고 부른다.
 
▲야쿠자와 불교, 어울리지 않는 커플
 
사실 무사들은 그 전에도 도박과 인연이 깊었다. 전쟁이라고는 하지만 대개는 성 밖에서 진을 치고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장기전을 벌여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사들은 장기전의 무료한 시간을 도박으로 보내곤 했다.

도박을 하다가 돈을 잃다보면 무사들은 나중에 자신의 칼이나 갑옷을 걸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것마저 다 털린 무사들이 문제였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당시의 일화를 모아놓은 '진총물어(塵塚物語)'라는 책에는 "전쟁터에서 도박으로 다 털렸던 무사일수록 용감했고,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무기와 갑옷 없이는 하루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다고 동료로부터 뺏을 수도 없다.

돈이 없으니 산다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남은 길이라곤 적을 죽여 빼앗는 것 뿐이다. 결국 도박으로 다 털린 무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적을 기습해 칼과 갑옷을 빼앗곤 했다고 한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용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도박과 인연이 깊었던 무사들이니, 호구지책으로 도박장을 개설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절과 야쿠자, 이처럼 인연이란 전혀 엉뚱한 데에서 맺어지곤 한다. 그게 세상이다.

유멘시아 [umentia.com]

*이 글은 블로그 플러스(blogplus.joins.com)에 올라온 블로그 글을 제작자 동의 하에 기사화 한 것입니다.
2007.08.15 09:0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