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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happen ??

IMF 잃어 버린 우리의 10년에 관한 논란

IMF 10년…한국 경제는 왜 역동성을 잃었을까

[경제뉴스 톺아읽기] 저투자·저성장…넋두리만 넘쳐나고 대안은 없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10년 전 오늘은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날이다. 꼬박 10년이 지났다. 21일 아침 주요 언론은 IMF 10년을 맞아 기획기사나 사설 또는 칼럼을 내보냈다. 흥미롭게도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는 모두 제각각이다. 오늘 '경제뉴스 톺아읽기'는 향후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지표와 여러 논점을 최대한 충실히 인용하고 비판하기로 한다.

구조조정은 잘 했는데 저성장 수렁은 왜?

먼저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구조조정과 청년실업, 신빈곤층 등을 거론한 뒤 "고용불안과 실업의 공포가 유령처럼 우리 사회를 배회했다"고 회고한다.

▲ 조선일보 11월21일 사설.
조선일보는 "외환위기와 IMF체제가 한국 경제에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과 구조개혁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라면서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이 한 단계 올라섰고 △자산 규모 세계 100위권에 드는 은행이 외환위기 전엔 하나도 없었지만 지금은 4개나 되고 △경상수지가 10년째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외환보유고가 2600억 달러를 넘어 세계 4위를 기록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결론은 애매하다. 조선일보는 "우리 경제는 여전히 기업 투자 위축에 따른 저성장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IMF 체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인다. 조선일보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신자유주의 구조개혁, 그리고 주주 자본주의의 확산이 투자 위축과 저성장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조선일보 송희영 논설실장은 칼럼 <정부와 관료에 배신당한 IMF 10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자민당과 관료세력이라는 핵심 뇌관을 폭파하는 수술을 시작했다. 금융회사의 부실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금융을 관장해온 대장성을 해체했고 경제 관료들이 낙하산 인사로 차지하던 자리를 하나 둘씩 민간인에게 넘겨줬다."

송 실장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오로지 정부만 개혁을 거부했다"고 비판한다. "경쟁하듯 조직을 키우고 공무원 숫자를 늘렸으며 그것도 모자라 퇴임 후 낙하산을 타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정확한 지적이지만 IMF 10년에 대한 평가치고는 지엽적이고 단편적이다. 금융 구조조정의 긍정적인 측면만 평가하는 것도 문제고 공무원 숫자만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송 실장의 결론은 간단하다. "고이즈미처럼 전쟁하는 각오로 관료 세력과 정부 조직을 개혁하겠다는 지도자가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줄기차게 작은 정부, 시장에 맡겨 두고 간섭하지 않는 정부를 주문해 왔다.

규제 완화하면 성장동력 살아날까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꺼져 버린 성장동력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김대중 정부를 겨냥, "환란극복의 가시적 성과에 급급해 경제 재도약의 잠재력을 까먹었다"고 지적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방만한 통화정책과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인해 신용카드대란을 불러왔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정부 역시 "복지와 분배를 앞세운 섣부른 경제정책으로 성장의 동력을 소진했다"고 비판한다. 중앙일보는 "온갖 규제로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그 결과 양극화가 오히려 심화됐고 청년실업이 넘쳐났다"고 비판한다.

▲ 중앙일보 11월21일 사설
중앙일보는 "무엇보다도 성장동력을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성장동력을 살리기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규제를 풀면 투자 의욕도 살아나고 양극화와 청년실업도 해결된다는 논리다.

한겨레의 모범생 답안…관치금융과 과잉투자가 원인?

한겨레는 사설에서 IMF의 원인을 "뿌리 깊은 관치금융과 무리한 과잉투자"에서 찾는다. 한겨레의 문제인식 역시 지극히 단편적이다. 그야말로 모범생 같은 답안이다.

한겨레의 고민에는 관치금융의 대안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금융 공공성을 내동댕이쳤던 지난 10년에 대한 반성이 없다. 과잉 투자가 지난 날 한국 경제의 공격성과 역동성을 불러왔다는 사실 역시 간과하고 있다. 과잉 투자가 아니었으면 삼성전자와 포항제철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있을 수 있었을까. 대우 패망의 원인은 분식회계와 경영 투명성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오히려 조선일보가 지적하고 있듯이 과잉투자가 아니라 과소투자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 한겨레 11월21일 사설.
한겨레의 사설은 뜬금없는 넋두리로 일관돼 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체질은 크게 강화됐다"면서도 "우리 경제가 굳건한 반석 위에 올라섰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하고 △서브프라임 △미국과 중국의 충격파 △가계 부채 △고용없는 성장 △양극화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한겨레 역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딜레마를 정확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구조조정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 부작용에 대한 해답은 엉뚱한 곳에서 찾는다. 당연히 한겨레는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의 결론은 "사회 양극화를 방치하면 정치적·사회적 불안 요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누가 새 대통령이 되든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를 제대로 치유해야 또 다른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처의 원인을 모르면서 어떻게 치유해야 한다는 말일까.

▲ 한겨레 11월21일 19면.
한겨레는 <나라안→나라밖 '위기의 불씨'가 바뀌었다>에서 "더이상 국지적 위기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며 "서브프라임 사태를 보면 세계가 거의 동시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달러 가치와 미국 자산의 가치 하락이 10년 전과는 다른 형태지만 또다른 위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적절한 지적이지만 정작 나라 안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다. "가계부실과 자산거품 등을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인 것이 전부다.

질적으로 성장했나 양적으로 성장했나

국민일보는 < IMF 10년 씁쓸한 현주소>에서 지난 10년을 "질적 성장을 이뤘지만 양적 성장은 미흡"하다고 평가한다. 국민일보의 상황 판단은 엉뚱하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국민일보는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졌다"면서 "1970∼1980년 연평균 7.0%, 1980∼1990년 8.4%, 90∼97년 7.0%에 이르는 고도성장을 하던 한국 경제는 2000∼2006년 4.5%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고 지적한다.

▲ 국민일보 11월21일 14면
그러나 국민소득 2만달러 수준의 나라에서 4.5%의 성장률은 결코 초라한 성적이 아니다. 한국이 1970년대처럼 7% 이상의 성장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 나라는 중국이나 베트남,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말고는 없다. 국민일보가 생각하는 양적 성장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참고로 지난 10년 평균 성장률은 캐나다 4.1%, 프랑스 3.2%, 독일 2.7%, 이탈리아 2.9%, 일본 3.4%, 영국 2.6%, 미국 3.2% 등이다. 핵심은 오히려 양적 성장이 아니라 질적 성장이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거치며 견실해졌다"고 평가한 부분도 문제가 있다. 제조업 부채비율은 1997년 396.2%에서 지난해 98.9%까지 뚝 떨어졌다. 그러나 과연 부채비율이 떨어진 것이 환영할 만한 일인가.

부채비율은 곧 설비투자와 관련이 있다. 한국 기업들 실질 설비투자 증가율은 전두환 정부(1983∼1987년) 14.9%, 노태우 정부(1988∼1992년) 12.1% 등 두 자릿수를 이어오다 외환위기를 맞게 된 김영삼 정부(1993∼1997년) 시절 7.9%로 떨어진 뒤 김대중 정부(1998∼2002년)에서 0.6%로 급락했다. 노무현 정부(2003∼2006년)에서는 3.9%로 다소 회복된 수준에 그쳤다.

빌리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고

부채비율이 낮다는 이야기는 곧 기업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현금을 마냥 쌓아두고 있다는 이야기고 그만큼 설비투자에 적극적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경제의 동맥 역할을 했던 은행이 기업 대출을 꺼린다는 이야기도 된다. 기업이 견실해지고 은행의 자산 건전성이 개선됐을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경제의 역동성은 줄어들었다. 고용없는 성장과 양극화도 여기에 원인이 있다.

은행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7.04%에서 지난해 말 2.31%로 높아졌다. 총자산 대비 순이익률도 1996년 0.30%에서 지난해 말 1.11%로 3.7배 확대돼 미국 대형은행 수준에 근접했다. 은행들 수익률은 높아졌지만 이미 우리은행을 빼고 대부분의 은행이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 지분이 70%가 넘는다. 은행은 손쉬운 가계 대출에 치중하고 있다. 그 가계 대출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갔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비율은 외환위기 직후 285조원에서 올해 3분기 말 750조원까지 불어났다. 명목 GDP 대비 개인부채 비중도 50% 수준에서 80%까지 치솟았다.

국민일보는 제럴드 시프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의 말을 인용, "한국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과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말로 결론을 맺는다. 전혀 엉뚱한 결론이다. "가계 부채가 소비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은 맞는 말이지만 파생금융시장에 말려든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한국의 가계 부채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 상식적이다.

약자를 겨냥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칼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엄습은 시장 만능주의와 승자독식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했고, 공공·금융·기업·노동 등 4대 부문 개혁의 칼은 주로 약자에게 향했다"고 평가한다. 정확한 지적이다. 다만 한국일보는 "기업은 투자를 꺼리며 단기 실적에 집착하고, 금융은 안전 대출만 선호하며, 공공부문은 밥그릇 지키기에 열심이고, 노조는 도덕성을 잃었다"고 양비론을 넘어 삼비론, 사비론으로 결론을 내린다. "사회의 총체적 활력과 건강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고민은 있지만 해답은 없다.

▲ 한국일보 11월21일 사설.
한국일보는 15일 배정근 논설위원의 칼럼이 더 돋보인다. 배 위원은 한국 경제의 역동성 상실에 주목한다. "기업가들이 '야수적 본능'을 잃어가고, 투자보다 배당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성장동력이 식어간다. 민간을 독려하며 성장을 이끌었던 공직 사회의 활력도 사라진 지 오래다."

한경은 이 와중에 이건희 편들기

한국경제 남궁덕 산업부 차장의 칼럼 <환란 10년 이건희 20년>은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다. 남 차장은 "곳간 사정이 넉넉해진 것은 좋은 물건 만들어 열심히 내다 판 기업의 공"이라고 찬사를 늘어놓더니 삼성으로 화제를 바꿔 "이 회장이 요즘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느니 "몸살보단 속병이 났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느니 너스레를 늘어놓다가 "이젠 삼성과 이 회장을 향한 채찍을 거둘 때가 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기 전에 마녀사냥식으로 삼성을 매도하는 분위기는 경제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 한국경제 11월21일 38면.
경향신문은 "기초체력이 지표상으로는 상당히 튼튼해졌다"는 재정경제부의 발표를 비중있게 인용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국은 △1997년 9월 648억 달러의 순채무국에서 올해 6월 810억 달러의 순채권국으로 전환됐고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등급(BB+ 또는 Ba1 이하)까지 내려갔다가 2002년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모두 A등급으로 올라갔고 △총외채가 1997년 9월 1774억 달러에서 올해 6월 말 3111억 달러로 늘어났고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중은 359%에서 55%로 크게 낮아졌고 △외환보유액도 1997년 12월 말 204억 달러에서 올해 10월 말 2601억 달러로 13배 늘어났고 △GDP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도 4%에서 27%까지 늘어났고 은행간 외환거래가 올해 4분기에는 230억달러 수준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지표는 나아졌는데…

서울경제는 여기에 몇가지 지표를 추가한다. △1인당 국민소득(GNI)은 지난해 1만8372달러에 이어 올해는 2만 달러 시대에 들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IMF 직후에는 7355달러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명목GDP는 1998년 3461억 달러에서 지난해 8874억 달러로 2.5배 늘어났고 △국민총소득은 476조 원에서 847조 원으로 늘어났다. 세계 12위권이다. △수출은 1997년 1361억 달러에서 2004년 2000억달러 돌파, 지난해에는 3254억 달러에 이른다. △금융기관의 43.6%(916개)가 구조조정됐고 △은행은 33개 가운데 16개, 증권사는 36개 가운데 15개, 종금사는 30개 가운데 29개, 보험사는 50개 가운데 20개가 정리됐다. 반면 총 118개사가 신설됐다. △연평균 일자리 창출 수는 1990~1997년 45만7천 개에서 1999~2006년 40만2천 개로 줄어들었고 △비정규직 비중은 2001년 26.8%에서 올해 들어 35.9%까지 확대됐다.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991~1997년 4.8%에서 2003~2006년 3.1%로 나빠졌다. △1997년 20조 원에 불과하던 가계부채는 올해 6월 현재 699조 원으로 무려 80배나 증가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991~1997년 54.0%에서 2003~2006년 75.5%로 크게 늘어났다.

▲ IMF 이후 10년 지표 변화 / 재정경제부.
동아일보는 B2면 <환란 10년 재경부는 자화자찬만>에서 재경부가 자화자찬 일색의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 경제는 여러 가지 그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가 지적한 그늘은 △국가신용등급이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보다 처진다는 것, 그리고 △단기 외채가 급등하고 있다는 것 △투자위축과 기업규제, 기업가 정신 위축 등으로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것 등이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양극화를 완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너무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데만 투자를 집중했고 그 결과 중산층의 기반이 허물어져 빈곤층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는 근시안적인 자세를 떨치지 못했다"는 경향신문의 지적은 정확하다.

경향신문은 "양극화를 완화하고 허물어진 중산층 기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기업가 정신으로 성장 견인해야"…언제적 이야기?

한국경제는 <환란 10년… 끝나지 않은 위기>라는 기획 시리즈를 세 차례에 걸쳐 내보낸 바 있다. 한국경제는 먼저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을 훼손된 기업가 정신에서 찾는다. 한국경제는 그 배경으로 △선단식 경영과 경제력 집중에 대한 정부의 규제 강화 △모험적 투자가 불가능해질 정도로 견제 기능이 강화된 기업지배구조와 증권 제도 △은행들의 기업대출 몸사리기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주식시장의 풍토 등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경제는 그러나 결국 반기업 정서와 시장원칙에 어긋나는 정부 규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다.

금융구조조정에 대한 평가와 대안도 어설프다. 한국경제는 "전체 수익에서 비이자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13%에 불과하다"며 인수합병(M&A)나 투자은행 업무를 확대할 것을 주문한다. "해외 자산의 비중이나 해외 부문의 이익 비중은 전체의 3% 안팎"이라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 뛰어들라는 조언도 내놓았다.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발전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지적했으면서도 내놓은 해법은 모두 양적 확대 일색이다.

시리즈의 끝은 역시 정부 규제 완화다. 한국경제는 "기업의 투자 부진에 따른 자본 축적 감소는 노동 투입 둔화를 부르고 그것이 다시 기업의 매출 증가세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면서 "기업 투자 부진을 해결해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서울경제도 사설에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사회 전반의 활력을 회복하는 일"이라며 "과도한 정부 규제를 줄이고 기업가정신 고취와 투자 활성화 등을 통해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지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규제 완화를 해법으로 주문하고 있다.

노동 유연성 개선 안됐다는 매경의 억지

매일경제는 특별히 100대 기업과 금융기관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싣고 있다. 특별한 부분은 없는데 <노동 시장 유연성 개선 안 됐다 56%>는 기사는 문제가 많다.

▲ 매일경제 11월21일 4면.
그래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지만 "많이 개선됐다"는 답변이 3%, "약간 개선됐다"는 답변이 44%에 이른다. 그런데 매일경제는 "보통"이라는 답변 46%와 "약간 악화됐다" 4%, "많이 악화됐다" 3%를 더해 "개선 안됐다 53%"라는 해괴한 결론을 내린다. 매일경제는 "외환위기 직후 정리해고법이 만들어졌지만 해고 규정이 까다로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외환위기 10년 참회하는 이는 왜 없나>라고 비분강개한 어조로 정부를 나무라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국가 경영을 잘못한 정부의 책임을 가장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환란 10년을 맞는 이 시점에서 정부는 최소한 국가를 부도 위기까지 몰고 간 잘못에 대한 솔직한 참회와 함께 또 다시 위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의 말이라도 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무슨 초등학생 웅변 원고 같은 문장들이다. 매일경제는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아 철저히 반성하고 경계하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이날 매일경제 어디에서도 반성이나 경계하는 자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 매일경제 11월21일 사설.
매일경제 조경엽 금융부장은 칼럼 <돈은 소리없이 세상을 바꾼다>에서 "한국 투자자들은 재테크 지식이나 기법에서 1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업그레이드됐다"면서 "한국 경제 장래를 믿는다면 증권이든 부동산이든 예금이든 묻어둔다면 불릴 수 있다"고 장기 투자를 조언했다. "가만히 있으면 원금을 까먹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투자와 투기를 혼용하는 이 신문의 지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칼럼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뭘까

눈여겨 볼만 한 기사는 연합뉴스가 11차례에 걸쳐 내보낸 <환란 10년> 시리즈다. 연합뉴스는 특히 '저성장'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연합뉴스는 우선 상장 제조업체들 현금 보유 비중이 총자산 대비 2000년 초반 7% 이하에서 2005년 10% 이상으로 확대된 사실에 주목한다. 연합뉴스 역시 규제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문하는 부분은 다른 언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저성장의 원인으로 주주자본주의를 지목한 부분은 돋보인다.

연합뉴스는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 개선과 단기실적 향상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투자가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대우 등 차입 위주의 공격적 확장 투자를 하던 재벌들이 무너지면서 기업들은 재무건전성 향상 위주로 경영방식을 바꾸게 되고 설비투자에는 소홀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물론 저성장을 보는 견해 차이도 있다. 일부에서는 성장이 지고지선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저성장이 고용을 감소시키고 분배를 악화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기업이 단기적 이윤에 집중하고, 인력을 줄이고, 연구개발을 안하고 인수합병 위협을 줄이기 위해 배당을 많이 하는 현상을 바꿔 자본과 고용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못하게 하는 제도와 기업의 재투자를 장려하는 세제, 투기자금 유출에 대한 규제, 은행의 기업대출 장려제도 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영업이익 주는데 경상이익은 느는 이유

인터넷신문 이데일리의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이데일리는 13일 <성장에서 실속으로…빛과 그림자>에서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의 이유를 수익성 위주 경영에서 찾는다.

이데일리는 대한상공회의소 자료를 인용, "기업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매출액경상이익률이 외환위기 이전(1991∼96년) 연평균 2.1%에서 외환위기 이후(2002∼2006년) 연평균 5.9%로 3.8%포인트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저금리정책에 따른 이자비용 감소, 차입금 축소 등의 영향으로 영업외수지 부문인 금융비용부담률(이자비용/매출액)이 외환위기 이전 5.8%에서 외환위기 이후 1.6%로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순수한 영업활동에서의 수익성을 나타내는 매출액영업이익률은 외환위기 이전에 연평균 7.1%에서 외환위기 이후 연평균 6.5%로 소폭 낮아졌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업이익은 줄어들었지만 경상이익은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영업을 잘해서 늘어난 이익보다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성 개선의 효과가 더 컸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이런 식의 수익성 개선이 한계가 있다는 것.

이데일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 "외환위기 이후 대표소송권, 회계장부 열람권 등 소수주주권과 관련된 제도 정비, 외국인 지분확대, 참여연대 등 소액주주 운동의 영향으로 주주 중시 경영이 활성화 됐다"면서 "기업 평가의 중심축도 자산, 매출액 등 외형중심 지표로부터 주가나 시가총액 등 시장정보로 급속히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주주중심 경영의 치명적인 한계

이데일리는 "이러한 경영환경의 변화에 대처해 기업들은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IR활동 강화 등 주주중심 경영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데일리는 긍정적인 의미로 인용했지만 사실 이 부분이 바로 저투자와 저성장의 원인이다. 주주중심 경영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상황에 한국은 직면해 있다.

IMF 이후 10년, 한국은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익히 지적됐듯이 전체 경제 측면에서는 고용없는 성장과 성장의 둔화, 기업 측면에서는 설비 투자 부진, 금융 측면에서는 공공성 약화와 국민 경제에서의 이탈, 국민들 측면에서는 양극화, 실업 등을 꼽을 수 있다.

그 대안으로 보수·경제지들은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문한다. 기업가 정신을 살려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미 규제는 상당부분 완화돼 있고 노동시장도 충분히 유연화 돼 있다. 얼마나 더 규제를 완화하고 얼마나 더 노동시장을 유연화 해야 하는가. 보수·경제지들의 해법은 아무런 울림도 갖지 못한다.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한겨레나 경향신문은 양극화를 고민하고 있지만 역시 지난 10년의 굴레를 벗어날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하다.

언론의 치열한 반성과 고민이 필요할 때

일부에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주주자본주의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일원화하기는 어렵다.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유효한 지점은 단기적인 이익을 좇느라 장기적인 성장의 기회를 잃고 있다는 부분이다. IMF 이후 10년, 우리 대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주주의 자격으로 금융시장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약간 감상적인 결론을 내리자면 투기자본은 론스타나 칼라일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 경제의 금융화, 한국 경제의 단기적·투기적 속성이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이런 일련의 변화를 개혁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금융 세계화와 주주자본주의의 확산이 불러온 극단적인 시장주의를 직면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어수선한 분위기 탓이겠지만 외환위기 10주년을 맞는 언론의 반성과 고민은 얕다. 대선 주자들 역시 천편일률적인 장밋빛 전망만 늘어놓고 있을 뿐 한국 경제의 현실과 대안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 IMF의 후유증을 얼마나 더 오래 겪어야 한단 말인가.

IMF 외환위기 일지

(1997년)
1월23일 : 한보 부도
3~6월 : 삼미, 진로, 뉴코아 등 대기업 연쇄 부도
7월2일 : 타이 바트화 폭락
7월15일 : 기아자동차 사실상 부도(협조융자 신청)
8월14일 :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폭락

1997년 11월21일 이전에도 위기의 징후는 여러차례 나타났다. 10월27일 모건스탠리증권은 '아시아 지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라'는 긴급 전문을 날렸다. 11월5일에는 홍콩의 페레그린증권이 한국 경제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보고서의 제목은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Get Out of Korea. Right Now)'였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등은 그때까지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굳게 믿는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1월5일 : 블룸버그, "한국 가용 외환 보유고 20억달러" 보도
11월14일 : 김영삼 대통령, IMF행 결심
11월16일 : 캉드쉬 IMF 총재 극비 방한, 구제금융 방안 논의
11월19일 : 강경식 부총리 경질, 임창렬 신임 부총리 임명
11월21일 : IMF 구제금융 신청 공식 발표
12월2일 : 9개 종금사 업무 정지(청송, 경남, 경일, 고려, 삼삼, 신세계, 쌍용, 한솔, 항도종금)
12월3일 : 대기성 차관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
12월5일 : IMF, 1차 지원금 56억 달러 제공
12월31일 : 부실 종금사 처리를 위한 가교종금사(한아름종금) 설립

(1998년)
1월30일 : 재경원, 종금사 1차 폐쇄 대상 10개사 명단 발표(한화, 쌍용, 경남, 고려, 삼삼, 항도, 청솔, 신세계, 경일, 신한종금)
4월1일 : 금융감독위원회 출범
5월20일 : 64조원 규모의 금융 구조조정 재원(1차 공적자금) 조달 방안 마련
6월18일 : 금감위, 퇴출 대상 55개 기업 발표(5대 그룹 20개사, 6∼64대 그룹의 32개사, 비재벌 계열 3개사)
6월29일 : 금감위, 금융기관 구조개혁 조처(동화, 동남, 대동, 경기, 충청 등 5개 시중은행 폐쇄 발표)
8월12일 : 금감위, 20개 보험회사에 대해 경영 개선 조처
8월28일 : 재경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및 기업교환(빅딜)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 마련
10월19일 : 5대 재벌 계열 사업 구조조정 방안 발표
11월5일 : :기아자동차, 현대에 낙찰
12월7일 : 정부·재계, 5대 재벌 구조조정안 합의

(1999년)
1월1일 : 제일은행,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지분 51%)하기로 합의
1월25일 : 영국 피치,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한국 장기외화채권 등급을 BB+에서 BBB로)
2월12일 : 미국 무디스, 한국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 조정(장기외화채권 등급을 Ba1에서 Baa3으로)
4월19일 : 대우그룹 구조조정 계획 발표(대우중공업 조선 부문 매각, 김우중 회장 보유 주식 매각대금 3천억원 출연 등 구조혁신 방안)
4월21일 : 부실 5개 생보사(동아, 태평양, 한덕, 조선, 두원) 공개 매각 절차 개시
4월23일 : 현대그룹 구조조정 계획 발표
6월30일 : 삼성자동차 법정관리 신청으로 삼성자동차·대우전자 빅딜 무산
8월6일 : 대우그룹·GM 자동차 부문 전략적 제휴 양해각서 체결
8월12일 :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 대책 마련(대우 구조조정 추진에 따른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투신사 수익증권 환매에 대한 대응 방안 강구해 8월13일 시행)
8월26일 : 대우그룹의 유동성 문제 해결과 구조조정 추진을 위한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돌입
9월17일 : 제일은행, 뉴브리지캐피털과 매각을 위한 주요 조건에 합의하고 투자약정서(TOI) 체결
10월30일~12월1일 : 대우그룹 12개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 계획 확정

(2001년)
8월23일 : IMF 관리 체제 졸업(IMF 구제금융 195억달러 전액 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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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 black@mediatoday.co.kr